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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잠이야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살뜰하고 그리운 간호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

photo by unsplash_Jiří Wagner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주기적으로 의식 활동을 중단하고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그 과정에서 누적된 신체 피로가 완화되고 정신이 정돈된다. 이것을 잠이라고 부른다. 잠의 기능은 아직 낱낱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항상 외부의 위험에 노출되어있는 야생동물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반드시 주기적으로 잠을 청할 정도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필수적인 활동이다.

작년 말, 한 수업 중에 있었던 일이다. 앞자리에 앉았던 내게 교수님이 학년, 나이 등의 간단한 신상정보와 함께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내가 “적어도 8시간은 잡니다”라고 답하자 교수님은 “그렇게 많이 자서 취업할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고등학생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입시를 준비하던 3학년 시절, 당시 담임 선생님은 일명 ‘4당 5락’ 이론을 시시때때로 설파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4시간만 자고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고, 반대로 5시간을 자면 떨어진다는 것. 청소년 권장 수면시간이 8시간 남짓인데 그중 절반을 아끼라는 것이다.

 

photo by pixabay_fancycrave1

 

매일 아침 출근 시간, 지하철에 타서 주위를 둘러보면 틀림없이 열에 두세 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주위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 눈에는 잠이 가득 차있다. 또렷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다들 간밤에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풍성한 잠을 자지 못한 게 틀림없다. 실제로 한국인 평균 수면시간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에 해당한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수면장애 환자는 무려 700만 명으로 추산되며, 덧붙여 한국인은 평균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수면시간보다 1시간 30분 부족하게 자고 있다.

 

photo by unsplash_Ferdinand Stöhr

 

우리 사회는 유난히 잠에 대해 인색하다. 할 일이 생기면 잠을 줄이는 데 익숙하고, 종종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잠을 적게 자는 사람이 곧 일 잘하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잠은 인생의 낭비로 호도된다. 하지만 우리는 잠을 너무 얕보고 있다. <수면의 약속>이라는 책에 따르면 지원자들을 깜깜한 방에 가둬놓고 마음껏 수면을 취하게 한 결과, 처음에는 수면 시간이 들쑥날쑥하다가 결국엔 8시간 15분에 수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적정 수면시간은 8시간 남짓이며 만약 그보다 적게 잔다면 몸은 은행처럼 오차를 저장한다.

이것을 수면 빚(Sleep debt)라고 한다.

잠이 부족해지면 신체장애와 가치 판단의 어려움이 찾아온다. 지속적으로 수면 빚이 누적된다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photo by unsplash_James Sutton

 

하루에 4~5시간만을 자고 일주일이 지나면 우리의 정신능력은 알코올 농도 0.1%와 비슷한 상태가 된다. 취객으로 가득 찬 지하철, 버스, 회사, 학교를 상상해보라. 그런 상황에서는 일 처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업무 또는 과제에 미쳐 하루에 4~5시간만을 잔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술에 취한 상태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고 자백하는 셈이다.

 

photo by unsplash_Hernan Sanchez

photo by unsplash_Kalegin Michail

 

20세기 가장 큰 재앙이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은 잠이 부족했던 엔지니어의 실수에서 비롯됐다. 이외에도 1986년의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 폭발 사건과 1989년의 엑슨 발데즈호 기름 유출 사건 또한 과로가 원인이었다. 일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자 의사결정의 능력이 상실돼 발생한 참사였다.

그러니 우리, 평소에 잠 좀 자자. 잠을 아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마치 미래의 행복과 건강을 가불 받아서 쓰는 것과 같다.  

글을 쓰느라 시간이 늦었다. 이만 자러 가야겠다.

 

글.프리터.이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