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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다음에서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너무나도 익숙한 문장이다. 학창시절, 우리 모두는 정답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문장 아래에는 틀림없이 5개의 선택지가 놓여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빠르게 정답을 찾기 시작한다.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서 곧바로 답을 낼 수도, 한참을 고민할 수도 있다. 어쨌든 나름의 문제 해결 과정을 지나서 고민 끝에 한 가지 답을 고른다. 만약 고른 게 정답이라면 문제에 할당된 점수를 오롯이 받게 된다. 하지만 만약 틀린 답을 골랐다면? 단 1점도 챙길 수 없다.

 

photo by unsplash

 

성장기에 우리가 맞닥뜨렸던 문제는 대부분 ‘정답이 있는’ 문제였다. 정해진 답에 따라 할당된 점수를 주는 형태의 문제는 점수 측정과 서열화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정답 혹은 오답’이라는 이분법적인 체계. 이런 방식을 기반으로 쌓아올린 점수를 통해 등급이 매겨지고, 등수가 매겨지고, 대학도 갔다. 수도 없이 반복하여 문제를 풀었고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은 점차 본능이 되어갔다. 정답을 찾지 못하면 국물도 없었다.

그땐 정답이 없는 문제가 없었다. 모든 문제에는 정답이 있었고 정답이 아니라면 필히 오답이었다.

 

photo by unsplash_Siebe Warmoeskerken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문제를 해결할 때 ‘정해진 답을 찾는 방식’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과는 다르게 이 방식이 잘 통하지 않았다. 한 번은 ‘휴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주제를 두고 C라는 친구와 논쟁했던 적이 있다. 동네 친구였던 C는 어느 날 내게 찾아와서 “휴학하고 공장에 들어가고 싶다”라고 했다. 이유는 이러했다. 첫째로 책상에만 앉아있는 생활에 이골이 났으며, 둘째로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해볼 것 같지 않은 일을 경험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반대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색다른 경험들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시기에 휴학한다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내 주장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에도 불구하고 C는 결국 휴학을 강행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C는 아직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휴학 이후 원하던 대로 지방의 가구 공장에서 몇 달을 일하던 그는 특유의 밝고 성실한 면모 때문인지 담당자 눈에 띄었고, 그의 손에 이끌려 본사 인턴을 하게 됐다.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다. 그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photo by unsplash_Igor Ovsyannykov

 

C가 정답이었던 걸까? 나는 틀렸던 걸까? 이후에도 나는 어떤 문제를 맞닥뜨리면 늘 하던 대로 정답만을 찾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내가 놓친 다른 선택지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일이 더러 있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으며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삶에 있어서는 정답도, 오답도 없다’

 

photo by unsplash_Redd Angelo

 

우리 삶은 영어 문제처럼 간단하지 않다.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얽혀있고 다양한 변수가 존재하며 그에 따라 매 순간 결과가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살아가며 마주치는 문제들에 대하여 절대적인 답을 찾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어떤 과정을 겪었는가에 따라 4점짜리 문제에서 10점짜리 답안이 나올 수도 있다. 일단 하나의 선택지를 골랐다면 뒤를 돌아볼 것 없이 최선을 다하면 된다. 문제 앞에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

어떤 선택을 하건, 최선을 다한 후에 돌아보면 모든 게 정답일 테니.

 

글.프리터.이한용